영상을 자막 없이 틀어놓고 몇 달을 들었는데 여전히 안 들린다. 그런데 자막을 켜면 모르는 단어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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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이면 어휘가 부족한 게 아니다. 내가 외운 소리와 실제로 나오는 소리가 다른 것이다.

단어를 하나씩 발음하지 않는다

우리가 단어를 배울 때는 하나씩 또박또박 배운다. 그런데 실제 말에서는 단어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끝소리와 첫소리가 붙고, 약한 소리는 통째로 사라지고, 강세 없는 모음은 뭉개진다. 그래서 아는 단어 세 개가 이어지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 덩어리가 된다.

이건 발음이 나쁜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어를 할 때 한 글자씩 끊어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속도보다 덩어리가 문제다

안 들릴 때 대부분 '너무 빨라서'라고 느낀다. 실제로는 속도보다 덩어리 단위가 익숙하지 않은 게 크다.

재생 속도를 0.75배로 낮춰보면 알 수 있다. 느리게 해도 여전히 안 들리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속도 문제가 아니라 그 소리 덩어리를 모르는 것이다. 반대로 느리게 하니 들린다면 속도 적응 문제라 반복으로 해결된다.

이 구분을 하면 뭘 연습해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흘려듣기가 효과 없는 이유

배경음처럼 계속 틀어놓는 방식은 듣기 실력을 잘 올리지 못한다. 뇌가 처리하지 않고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귀에 익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익숙함과 알아듣는 것은 다르다. 몇 달을 들어도 그대로인 경우가 흔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필요한 건 '지금 뭐라고 했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 확인이 없으면 반복은 시간만 쓴다.

실제로 느는 순서

짧게 자른다. 30초에서 1분짜리 구간 하나를 정한다. 긴 영상 전체보다 짧은 구간을 여러 번 도는 게 효과가 크다.

자막 없이 듣고 받아쓴다. 안 들리는 부분은 빈칸으로 둔다. 이 빈칸이 정확히 내가 못 잡는 소리다. 막연히 '안 들린다'가 구체적인 목록이 된다.

자막을 켜고 대조한다. 빈칸에 뭐가 있었는지 확인한다. 대부분 아는 단어일 것이다. 여기서 '아는데 안 들렸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그 구간을 소리 내어 따라 한다. 원어민이 붙여 발음한 그대로 따라 한다. 내가 그 방식으로 발음할 수 있게 되면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입이 아는 소리를 귀가 잡는다.

다시 자막 없이 듣는다. 방금 빈칸이었던 부분이 들리는지 확인한다.

얼마나 해야 하나

하루 한 구간, 10분이면 충분하다. 긴 영상을 한 시간 흘려듣는 것보다 짧은 구간을 정확히 뜯는 게 낫다.

같은 구간을 며칠에 걸쳐 반복해도 된다. 오히려 그게 소리 덩어리를 몸에 붙이는 방법이다.

정리하면

듣기가 안 되는 건 대개 어휘나 속도가 아니라, 실제 말에서 소리가 붙고 사라지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짧게 자르고, 받아쓰고, 대조하고, 따라 하고, 다시 듣는다. 흘려듣기를 이 순서로 바꾸는 것만으로 몇 달째 그대로였던 구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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